2021년 11월 2일의 내가 2020년 11월 2일 너를 기억하며.

요즘 기분이 좀 이상해.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채우면 작년 이맘때가 많이 떠올라.

추위와 한기를 느끼며 매일같이 건너던 강남 러셀 가는 길의 신호등….

그 시간에는 강남 한복판 횡단보도에도 나 혼자만 있더라. 어슴푸레한 아침 새벽에 큰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가면서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했다?

 하하. 이 수많은 거대한 차들. 도로 위엔 나 하나뿐인데, 모두가 내가 건너가라고 멈춰있구나. 그래. 나 다 건너갈 때까지 거기 그대로 가만히 있거라.’

도로 위를 쌩쌩 달리던 차들이 내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오직 나 한 사람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거야. 꼭 도시의 지배자가 된듯했어. 얼마나 위풍 당당했던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고선 살아가기가 벅찼던 것 같아.

학원 앞에 있는 학사 단칸방에서 혼자 매일을 시작하고 끝냈어. 대화를 나눌 친구라곤 단 한 명도 없었고, 하루종일 내가 뱉는 말이라고는 배식 해주시는 아주머니께 하는 ‘감사합니다’ 뿐이었지.

혼자 있고 공부만 하니까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았어.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생각, 날 힘들게 했던 그 애를 미워하는 생각, 나보다 나를 더 챙겨주는 사람에게 고마운 생각, 늘 가던 교회가 그리운 생각, 엄마와 가족에 대한 생각, 보던 웹툰 주인공에 대한 생각.

내 머릿속은 곧 닥칠 수능의 부담감에서 도피하려고 다른 생각이면 어떤 것이든 하려고 안달이었어. 의식적으로 멈추지 않으면 생각이 날 지배해버려서 집중을 못 했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음악이 재생됐어. 수학 문제를 푸는데 음악 소리가 귀에 계속 들리는 거야. 나는 속으로 계속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 멈추지 못했어. 문제를 입으로 소리 내서 읽지 않으면 문제에 집중할 수가 없었지.

강박처럼 따라다니는 생각들에 스스로를 고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답답했고 괴로웠어.

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부정맥 기가 심하게 올라왔고, 마스크를 쓰는 것과 더해져 숨쉬기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 심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서 뛰는것 같고 계속해서 심장 소리가 귀에서 들렸어. 그럴 때면 가끔 자습 시간에 몰래 탈주해서 옆에 있던 신설 아파트 공원을 산책했지. 잠깐은 괜찮아지더라.

수능 1주일 전이었나, 김동욱 쌤이 올려주신 캐스트를 봤는데 쌤이 그러시더라고. ‘다 괜찮다고’. 묵묵히 담담히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콸콸 쏟아지는 거야. 공부하면서 한 번도 운 적 없었는데 , 그 날 그 자리에서 눈물로 세수를 했어.

선생님께서는 나보고 다 괜찮다고 하셨어. 나는 딱히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그 말을 누군가 해준다고 해서 상황이 괜찮아지는 게 아닌 것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내가 눈물이 났던건, 누군가 내게 괜찮다고 말해줘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인 것 같아. 그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본 적이 없더라. 사실 알고보면 진짜 괜찮았는데. 

그렇게 앉아서 한 시간을 울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 카페인도 끊었더니 그 뒤로는 귀에 심장 소리가 좀 덜 들렸어.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그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아니 바랄 수가 없었어. 바라는 순간 그건 중압감이 되어 나를 그대로 눌러버렸고 나는 미안하지만 그걸 다 이겨낼 깜냥이 없는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그냥 놓아주었어.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늘 되뇌었고, 시험을 못봐도 난 이미 얻은 게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 한 순간도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했어. 그냥 무작정 그냥 열심히만.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공부하는 애들은 내게 너무 큰 힘이 됐고, 나보다 일찍 등원하는 애들은 큰 자극이 되어줬어. 나는 공부를 하는 내 모습 그 자체를 사랑했고, 매사에 감사했고,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았어. 그렇게 노력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되더라.

물론 다 지난 이야기지만 말이야.

그때의 경험은 내 인생 길이길이 아주 큰 자존감이 되어 줄거고, 어떤 인생의 길 앞이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면 못할 건 없다는 도전 정신을 줄거야. 그래서 이 계절에 느껴지는 한기가 오싹하고 끔찍하지만은 않다. 그때의 기분이 날 감싸면 저절로 온몸에 소름이 돋지만, 나는 이 기분을 매년 잊지 않고 기억할거야.

있잖아,

정말로 다 괜찮아. 응. 진짜로 괜찮아.

여기까지 힘들게 왔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을까...

네 겉에 있는 네 모습은 늘 강한척 해왔을지 몰라도, 속에 있는 연약한 너 자신은 매일매일 갈리고 깎여왔잖아. 오늘 밤에는 그냥 네 속에 있는 너를 꼭 안아줘. 힘들었지, 오늘도 고생했어, 하고.

못하든 잘하든 진짜 고생한 건 맞으니까. 노력했으면 된 거야, 최선을 다해. 했으면 그걸로 너가 해야 할 건 다 했어. 

제발 더 이상 네 속의 너를 벼랑 끝으로 몰고가지 말아줘.

아니, 오히려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있는 너에게 손을 꽉 붙잡아줘.

괜찮다고 위로해주고 꼭 안아줘. 언제나 그렇듯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하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냥 믿어주고 응원해줘.

그렇게 해야, 진짜로 네 속의 너가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시험 볼 수 있더라.

욕망과 비난으로 똘똘 뭉친 너는 계속해서 널 쪼아댈지 몰라. 

결과를 놓아줘, 그리고 그냥 네 자리에서 할 수있는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꼭 붙잡아줘. 여기서 무너질 수 없잖아. 

불안한 것도, 걱정되는 것도, 힘든 것도 너가 열심히 해와서 느끼는 것들이야. 그런 감정과 기운들을 느낀다고 스스로 이상하게 느낄 필요 없어. 더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정말 잘하고있어. 얼마 안남은 시간동안 네 속에 있는 너 자신을 아낌없이 사랑해줘. 

그래서 그 마지막 날에 믿음과 안도감으로 똘똘 뭉친 네 자신이 영롱히도 빛날 수 있게. 

나도 여기서 끝까지 응원할게. 

다 괜찮아. 세상에 괜찮지 않은 건 없으니까. 

+) 제가 아파했던 경험이, 여러분의 마음에 닿아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 다행입니다.

저에게도 마음에 담고 싶은 글이 있듯, 혹여나 이 글을 간직하고 싶은 분 계실까 pdf 파일 추가로 첨부합니다. 이렇게 파일 올릴 아이디어 제공해주신 김*후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