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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냄새

이름 : 최민기  스크랩
등록일 :
2022-10-22 03: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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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45,652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최민기입니다.

어느샌가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고, 부쩍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했네요.
저만 그런진 모르겠는데, 겨울 냄새만 맡으면 작년 수능이 생각납니다.
무겁고 처진 공기, 어느샌가 차가워진 바람, 사람들은 한 겹 두 겹 옷을 껴입기 시작하고, 내 마음까지도 얼어가기 시작하던 그 당시. 칼럼이라는 명목으로 한 번 되짚어 보려 합니다.
(퇴고를 거치면서 어투를 고쳤는데, 중간중간 빼먹은 부분이 있네요. 다시 고쳤습니다.)
#1 기상, 아침 루틴
동이 트기 전 일어나, 나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기암시와 함께 샤워를 하며, (이 때 차가운 물로 refresh하는 것은 잊지않는다!) 따뜻한 옷으로 여러 겹을 입는다. 어제 밤 적은 수능장에서 볼 노트를 챙기고, 예열지문을 챙기고, 수험표, 신분증,  간식 등등.. 빠진 건 없나 살펴본다. 그 뒤, 3년 동안 정말 고생했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준다. 그리고 3년 그 이상을 나와 함께한 내 책상, 지금까지 풀었던 책들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고 작별을 고한다. 아버지는 차에 시동을 걸러 먼저 내려가시고, 어머니는 나에게 점심도시락을 준다. 이내, 아버지의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 시험장으로 출발한다. (시험장이 강 건너에 있었습니다.) 몹시도 추운 날씨와 매서운 칼바람, 축 처진 공기는 나를 옥죄어왔지만 나를 차분히 다독이며 차에 탄다. 

#2 시험장으로 가면서
시험장으로 가면서 창밖을 바라보면 아직도 새벽이다.
참 여러 생각이 오고간다. '잘 할 수 있겠지?' '에이, 내가 아니면 누가 잘 해?' '그래도, 혹시 마킹 실수하면 어쩌지?' '에이, 설마 그러겠어.' 수많은 물음표들을 내가 나에게 던지고, 수많은 자기암시로 물음표들을 막아낸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무섭다. 두렵다. ... 다시 자기암시를 한다. 행복하다. 나는 최고다. 만점 받을거다. 내가 누군데?.. 창밖을 바라보면 서서히 해가 고개를 내민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한다. 도로에 차들도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어느새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한다. 언덕 위에 있는 학교가 보인다. 

#3 시험장에서
겨울 새벽의 찬 공기를 맞으며 아버지의 차에서 내리고 어머니와 한 번 포옹한 뒤 애써 웃으며 시험장으로 들어간다. 입은 웃고있지만 눈은 슬픈, 그런 느낌? 뒤돌고 난 뒤에는 표정이 싹 굳어진다. 교문에서 건물까지는 또 얼마나 먼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생각이 참 많아진다. 그렇게 2분 정도 걸었을까, 현관에서 손소독을 하고 시험장을 확인한 뒤 올라간다. 너무 일찍 온 탓일까, 비어있는 시험장도 많고, 대부분의 시험장은 1명 내지는 2명만 앉아서 예열 지문을 풀고 있을 뿐이다. 복도쪽 뒤에서 3번째 자리가 내 자리다. 추운 날씨 탓에 손은 벌벌 떨리고, 몇 시간 뒤면 내가 시험을 본다는 긴장감에 심장은 요동치고, 가져온 예열지문은 분명히 아는 내용인데도 글자들이 막 튕겨나오고.. 결국 어제의 내가 시험장에서의 나에게 쓴 위로의 글을 읽고, 찬 공기를 조금 쐬고 난 뒤에야 예열 지문을 풀었다.

#4 진짜 시작
예열 지문을 다 풀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보면 1명, 2명씩 시험장에 도착하고, 무서운 종소리가 울린 뒤 감독관 선생님께서 들어와 물품들을 수거해간다. 다시 한 번 무서운 종소리가 울리고,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마개, 6모 전에 사둔 카시오 수능 시계, 신분증, 0.5짜리 아인 샤프심, 혹시 몰라 챙겨둔 여분 컴퓨터 싸인펜, 그리고 연필 몇자루, 수험표, 지우개, 수정테이프를 모두 꼼꼼히 확인해본다. 음, 잘 챙겼군, 다시 무서운 종소리가 울리고 시험지를 받는다. 내 앞자리 친구는 안온건지, 못온건지 쓸쓸한 책상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뭐, 내 상관 아니다.

#5 국어
종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안된다. 
파본 검사를 하며 독서의 소재들을 파악하고, 브레턴우즈 체제를 보며 독서 소재를 정리해놨던게 생각나고, 문학을 보면서 연계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고 평가원 욕을 좀 한 뒤, 법지문이 안나와 아쉽다는 생각도 한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언어부터 풀기 시작한다. 
헌데, 이게 웬말인지, 첫 문제부터 안풀린다. 글이 안읽힌다. 분명히 예상했던 지문형 문법 소재인데,
글자들이 내 머리속으로 흡수되지 않고 눈앞에서 뛰어노는 느낌이다. 
심호흡을 한다. 눈을 의식적으로 감았다가 뜬다.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 다시 문제를 푼다. 어찌저찌해서 풀긴 했지만, 결국 손가락을 못 걸고 넘어간다. 
갑자기 영화 기생충이 떠오른다. '시험이라는 게 뭐야? 앞으로 치고 나가는 거야 그 흐름을, 그 리듬을 놓치면 완전 꽝이야. (중략)실전은 기세야, 기세.' 음, 기세좋게 망했군. 그래도 꾸역꾸역 풀어나간다. 평소 12분이면 언매를 다 풀었는데, 벌써 18분을 써버렸다. 
긴장감과 더불어 조바심까지 내 마음 한 켠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아무튼, 독서론을 풀기 시작한다. 무난하게 독서론을 풀고는 헤겔을 만난다. 이게 뭔소리야, 내가 읽고 있는게 한글인지 한문인지 영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긴장한 탓에 심장 박동이 느껴지고... 시간은 나를 보채고.. 어찌저찌 시간을 때려박아 풀어낸다. 
그리고 경제지문을 마주친다. 그래도 철학 지문보다는 경제 지문에 자신있던 나는, 호기롭게 표를 그리며 문제를 풀어간다...만 어처구니 없게도 4문제 중 3문제나 틀리고 만다.
조바심과 긴장감이 나를 망쳤나 보다.

#6 쉬는 시간
아무튼 그렇게 국어를 망쳐버렸다. 9모 10모를 모두 100점을 받은 국어황, 이라고 자부했건만, 이렇게 무너지니 참 힘들었다. 1교시가 끝나고 집에서 챙겨온 간식을 먹으면서 화장실에 한 번 들린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 보인다. 애들이 시험은 잘쳤냐고 물어본다. 대충 너무 어려웠다는 얘기를 하고 이런저런 수다를 떤 뒤 수학 시험을 위해 타종 10분 전에 시험장으로 돌아선다.
사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는 마음이 참 무거웠다. 최저나 맞춰야겠다는 생각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샌가 긴장이 풀리고, 학교에서 보는 모의고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7 수학
다시 무서운 종소리가 울리고, 문제를 쓱쓱 풀어나간다. 이게 웬걸? 생각보다 너무도 잘 풀린다.
미적분 30번을 앞두고는 시간이 70분이나 남아 29번까지 한 번 더 체크하고 다시 왔다.
그래도 45분이 남았다. 음, 100점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30번을 풀었다.
풀고 난 뒤에도 시간이 남아 30번도 검토해보고, 여유있게 마킹한 뒤, 지금 남은 시간을 국어 시간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하는 이상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계산 실수는 없는지 이리저리 찾아보면서 수학 시간은 끝났다...만 30번은 계산 실수를 결국 하고야 말았다. 96점을 받았다.

#8 점심시간
밥을 먹을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 어머니께서 전날부터 부랴부랴 싸주신 밥, 국.. 너무도 감사히 생각하며 먹었다.
사실 이 날은 화를 최대한 내지 않고 모든 것에 감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감독관분들도 나의 수능을 도와주러 온 거지 망치려 온 건 아닐테니까. 
아무튼 밥을 먹고, 슬슬 나른한 시간이 다가온다. 친구를 만나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시험 얘기를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영어를 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 사실 걱정은 없었다. 모의고사 내신 3년 통틀어서 영어는 항상 고정 1이었으니까...
라고 말해놓고 수능때는 간신히 1등급을 받았다. 왜 틀렸는지는, 글쎄, 지금도 잘 모르겠다.
풀때만 해도 시간도 남고 100점이라고 생각했건만, 채점을 해보니 의문사를 많이도 했다. 

#9 한국사, 탐구
한국사 시간, 10분동안 풀고 바로 잤다. 탐구 시간이 되었다. 탐구도 마찬가지로 전혀 긴장이 안되었다. 나는 사문 정법을 선택했는데, 사실 두 과목 모두 항상 만점을 받았기에. 그러나, 또 의문사해버렸다. 사문에서 2개가 나가, 결국 첫 사탐 2등급(!)을 수능에서 받아버렸다. 개념에서 2개나 틀려버리니 참 지금까지 해온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정법은 쓱쓱 잘 풀렸다. 후에 알게된 사실인데, 사실 정법이 표점따기 좋다해서 선택했던 과목인데도 불구하고, 수능때는 만점 표점이 제일 낮았다. 2개 틀린 사문이랑 표점이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탐구까지 중요한 시험은 모두 끝났다. 나는 제2외국어도 선택했기에 남아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포기각서 쓰고 많이들 나가던게 기억이 난다.

#10 제2외국어
나는 서울대 수시를 썼기에 제2외국어를 응시해야만 했다. 한문을 선택했는데, 한문은 정말 지문이 수특과 수완에서 거의 다 나오더라. 제2외국어 첫 1등급을 수능에서 받았다. 

#11 끝
아무튼,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나오니 해는 저물고 벌써 어두운 밤이 되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메가스터디 채점을 돌리던 그 순간,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무슨 X가 이렇게 많은지. 난생 처음보는 국어 점수.
'음, 재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비롯해 온갖 잡생각들이 머리속을 헤집기 시작한다. 집에 돌아온 뒤, 무작정 평소 좋아하던 한적한 장소로 떠났다.
잔잔한 파도 물결, 살랑이는 바람, 추운 날씨, 어두운 주변, 쌩쌩달리는 차들, 난생 처음 받아본 점수. 슬펐다. 
왜냐하면 그때의 난 대학이 전분줄 알았으니. 내 3년의 목표가 좌절되는 줄 알았으니. 정말 두 번 다시 수험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12 끝?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돌아본다면, 그리고 수능때 왜 드라마틱하게 성적이 떨어지게 되었냐, 라는 물음에 답한다면 그것은 시험장이라는 환경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온전히 나의 탓이지요.
저는 9모 10모 모두 서울대 어느과를 써도 붙을 성적을 받고, 그만 자만해버렸습니다. 
10모를 상당히 잘치고 난 뒤에는 만점자 인터뷰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한낱 철없는 고3이었을 뿐이지요.
네, 온전히 나의 탓입니다. 괜히 환경탓, 누구탓, 남탓, 이것저것을 탓하면서 정당화하다보면 나 자신만 추해질 뿐입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도 지난 성적을 보며 자만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혹은 작년 수능 환경을 탓하며 정당화하지는 않았나요?

뭐, 이런 말을 여기저기서 자주 봤습니다. '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라는 말이요.
네, 멋진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말 한 번 써보려고요, 여러분들은 여전하겠습니까? 혹은 역전하겠습니까?

남은 시간 26일, 아직 역전골을 넣을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습니다. 

+ㄱㄱㅎ 과외돌이 ㅂㅈㅇ 화이팅!
항상 고마운 내 친구 ㄱㅎㅊ도 화이팅!
경일고등학교 친구들도 전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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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22학번
  • ○ 인문계열 / 수시전형
  • ○ 메가스터디 18기 목표달성 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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