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지막 칼럼으로 돌아왔습니다. 유은강입니다.

지난 목요일, 수능이라는 큰 시험 보시느라 다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도 당일에 문제가 나올 때마다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풀어봤습니다. 확실히 수능 공부를 하지 않으니 문제가 정말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제가 난이도가 어땠고, 출제 기조가 어땠고를 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독서실에 다니며, 학원을 다니며 수능을 준비하고 그 날을 위해 버텨 온 사람들에게는 그 때 본 그 수능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난이도는 그렇지 않을 수 있더라도, 우리의 수능에는 우리의 살아온 삶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난 목요일의 여러분은 가장 힘든 시험을 치르셨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논하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마무리하신 여러분들께 수고 많으셨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힘든 시기,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칼럼은 마지막인 만큼 엄청나게 길어질 것 같습니다. 전부 읽지 않으셔도 되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면접, 논술 등으로 남은 한 해를 잘 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항상 화이팅입니다.

제가 수능 보기 전에 수능은 운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신경 쓰이지 않게 약간은 가볍게 말하고 넘어갔었는데, 사실 저는 수능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은 전부 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공부머리부터 해서 가정 환경, 성격, 교우 관계, 사는 지역, 국가, 인종, 건강 등 운에 의한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지금 운 좋게 대학 잘 가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태어났다면, 학원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공부머리를 어느정도 타고 나지 않았다면, 부모님이 믿어주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여기서 글을 쓸 수나 있었을까요. 더 나아가 빈민국에서 태어났거나, 심지어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태어났다면 말입니다. 

너무 부정적인 상황만 가정하는 것 같긴 하지만, 긍정적인 상황을 가정해도 똑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사교성이 좋은 성격이었다면, 이성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더라면, 코로나가 오지 않고 고등학교 내신이 약간 더 좋았더라면 과연 서울대에 갈 수 있었을까요. 어렸을 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책이라도 많이 읽을 수 있었고, 연애를 못해 더 많이 공부할 수 있었고, 코로나가 왔고 내신이 좋지 못했기에 수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좋았든 좋지 않았든 지금까지 제가 통제하기 어려운, 운에 의해 결정되는 요인들 덕분입니다. 물론 여기까지 오며 제가 선택할 수 있었고,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었던 요인들도 매우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제가 고른 선택들과 행한 노력들마저 저의 가치관과 과거를 바탕으로 도출된 것이기에, 운의 영향 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핫한 주제인 멀티버스 또한 이런 개념을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 선택마다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고, 그 선택들에게는 항상 후회가 남게 됩니다. 이 후회라는 것은 우리가 놓아버린 수많은 가능성에 대한 본능적인 아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지 않으면 크게 후회하고, 운이 좋다면 덜 후회하게 되겠죠. 

사실 제가 말하는 운은 우연입니다. 모든 우연이 만나 인생은 수많은 가능성을 제쳐 두고 현재의 삶, 딱 하나로 귀결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 또한 운이 좋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부모님을 잘 만나 처음부터 부자였던 사람들이야 말 할 것도 없고, 자수성가를 이루어 낸 사람들 또한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또한 악인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범죄자들 또한 운이 안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모든 성정과 행동들도 운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운을 맹신하고, 강조하는 이유는 먼저 겸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약간은 가식적이더라도 이를 이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당장의 좋지 결과에 대해 나의, 너의,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라고 하는 위로를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겪으면 저 또한 그랬듯이 스스로 굉장히 위축되고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저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로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저 뿐만이 아닌,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그건 너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네가 힘든 이유는 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고, 절대로 네가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너는 꽤나 잘 해줬다고, 그렇게 전하고자 합니다.

저도 고등학생 때 무척 힘들었습니다. 과학고에 온 것을 얼마나 후회했던가요. 스스로 얼마나 한심했던가요. 저를 지켜보던 부모님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갔을까요. 다가올 미래는 얼마나 불안했던가요. 

수면 패턴이 이상해져 매일 새벽 4시에 잠에 들며 지금은 운이 좀 안 좋을 뿐이라고, 내일은 다를 거라고, 나중의 좋은 일이 지금의 위안이 될 거라고 매일을 자위하며 버텼습니다. 좋은 일이 미래에는 결국 있을 것이기에, 지금의 나쁜 일들은 모두 미래의 좋은 일을 위한 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입시에 성공하여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겠지만, 제가 재수 삼수를 했더라도 이런 생각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끝까지 스스로 위안을 주며 버텼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결과로 과정을 판단합니다. 결과는 그동안의 과정으로 인한 것이기에 지금은 나빠보이는 과정 또한 나중에 보면 좋은 과정이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저는 희망이라 부릅니다. 힘들 때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기를 되찾는 것이 아닌 힘든 시기를 속으로 삼키며 담담히 미래가 과거의 위안이, 과거가 미래의 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저에게 희망은 이런 것입니다. 

물론 많이 힘들 때는 이런 희망조차 바로 떠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 당장의 큰 힘듦을 담담히 보내며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희망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의 힘듦을 서서히 흘러 보내며 희망을 품고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두서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능을 보고 온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다시한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래 비밀댓글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번 칼럼에서는 비밀댓글을 열어놓겠습니다. 지금의 감정이나 후회를 털어놓고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1년 간 고마웠습니다. 다들 잘 되실 겁니다. 이제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