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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즐거운 편지

이름 : 이강  스크랩
등록일 :
2023-02-20 19: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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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24,172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선생님들께 보내는 열 번째 즐거운 편지, 18기 목표달성 장학생 이강입니다.

 

목차
1. 그래서, 어떻게?
1.1. 질문하고 메모하기
1.1.1. 질문과 메모의 이유
1.1.2. 메모해야 할 '질문'
1.2. DB 구축
1.3. 요약하기
2. 그래서, 무엇을?
2.1. 인문
2.2. 사회

2.3. 자연

 이제 선생님들과 만날 날이 두 달도 남지 않았네요. 이제 가볍게 들으시면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고 싶은데, 목표달성 장학생을 '졸업'하기 전, 저에게는 '사명'과도 같은 칼럼을 작성해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제 '어떻게' 시리즈의 절정을 완성하고 싶네요. 앞서 '어떻게 방학을 보낼 것인가' 편에서 무슨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는 설명드린 것 같습니다. 이 칼럼에서는 어떻게 읽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한 제 나름의 방법론과, 무슨 책을 골라 읽어야 할지를 분야별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칼럼은 대부분 '책'을 읽는 방법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지만 '논문'과 '기사'를 읽을 때도 적용됩니다. 자, 그럼 어떻게 읽어볼지 살펴볼까요.

1. 그래서, 어떻게?

1.1. 질문하고 메모하기

1.1.1. 질문과 메모의 이유

 텍스트를 읽는 과정은 '질문'의 연속입니다. 흔히들 독서를 작가와 독자의 대화라고 하지요.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나 주장을 책 안에 녹여냅니다. 논문과 책의 차이점은 책이 조금 더 '캐주얼'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논문에서는 작자 자신의 경험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는 아무리 학술적인 내용의 글이라고 해도 작가가 '나'로 등장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을 조금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책은 논문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중립성을 줄인 글입니다. 이때 문제 되는 지점은 독자가 작가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을 때입니다. 물론 작가의 전체적인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도, 작가의 모든 말에 동의할 수는 없겠죠. 이때 중요한 것은 '왜?'라는 질문입니다. 열심히 잘 들어오면서 흘러오다가도, 문득 '어?'하는 지점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선생님들이 주목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분명히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인데, 왜 이 지점에서 작가와 나는 해석하는 부분이 다를까?' 이 질문은 사실 해결하기 쉬워보입니다. 작가의 의견은 앞뒤를 살펴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 권 안에서 그 질문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정말 궁금하거나 시간이 충분하다면 동일 작가의 다른 책을 살펴보아도 됩니다. 심지어 그 작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조차 이해되지 않는다면, 참고 문헌으로 제시한 글을 읽어보는 방법도 있겠지요. 이렇게 '작가는 왜?'라는 질문은 해소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이 '작가는 왜?'라는 질문으로 끝날 때입니다.
 제가 최근에 읽었던 책을 예로 들어볼까요? 최근에 저는 『고교독서평설』에서 소개되었던 브래디 미카코의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정수윤 역, 은행나무, 2022)를 읽어보았습니다. A학생이 그 책의 작가가 '프리스쿨'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가지고, 앞뒤를 읽어보며 이 사람이 '프리스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계는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왜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는지, 관련 기사로 제시한 '가디언'의 기사까지 참조해 보았다고 해 보죠. 겨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프리스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작가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OK. 작가는 이런 논리로군.'이라는 결론까지 얻어냈습니다. 이것 하나 알아내자고 시간도 너무 많이 썼네요. 자, 이제 다른 책을 읽어볼까요?
 제가 생각하는 독서론에 따르면, 이 부분에서 선생님들이 찜찜해 하셔야 합니다.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질문, '왜 이 지점에서 작가와 나는 해석하는 부분이 다를까?'라는 질문은 사실 두 가지 질문으로 나누어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어가 두 개잖아요. '작가는 왜?'라는 질문과 함께 '나는 왜?'라는 질문도 하셔야 합니다. 이 지점이 제일 간과하기 쉬운 지점입니다. 제가 항상 말씀드리잖아요. 주인공은 선생님들이셔야 합니다. 작가의 논리을 수용하기만 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되지요! 한 사람의 생각은 마치 '도구'와도 같습니다. '공기'와도 같겠네요. 우리는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게 우리 앞에 나타나는 시점은 바로 우리가 그 '도구'나 '공기'의 존재에 대해 물어볼 때입니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혹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가?' 자기 자신의 전제를 깨 버리는 '해체'의 과정을, 선생님들이 책을 읽으면서 꼭 한 번씩은 거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하나 더 발생합니다. 우리의 기억력의 한계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선생님들께서 교과서를 읽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눈으로 텍스트를 후루룩 따라갈 때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책을 덮고 백지를 꺼내,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눈을 감고 그 내용을 떠올려 봅시다. 얼마나 떠오르나요? 저도  한 챕터 읽고 다시 떠올리려면 끊어지는 부분에서 다시 읽어야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활용해 문제를 풀어야 할 때는 더욱 기억이 안 납니다. 이때 하나의 '방아쇠'(trigger)가 필요할 것입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도 '삼차함수의 도함수'라는 '방아쇠'를 당기면 문제를 풀기 약간 수월해지는 경우가 나타나지요. 눈을 감고 외다가 눈을 살짝 뜨고 한 단어만 보아도 그 다음이 바로 떠오르는 경우를 선생님들도 체험해 보셨을 겁니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마구마구 떠오르는 것 같지만, 책을 덮고 그 질문을 떠올리라고 하면 얼마만큼 떠올릴 수 있을까요? 당장을 넘어, 이틀 후에 여쭤본다면 말입니다. 아마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암기할 때는 내 앞에 텍스트라도 적혀 있지, 기억은 이미 지나가서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메모'입니다. 이것은 별 건 아니고, '내가 한 엄청난 생각들'을 기록하기 위해 자기만족의 도구라고, 농담섞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실행해 보아야 할까요?

1.1.2. 메모해야 할 '질문'

 일단 메모해 놓아야 할 '질문'들이 무엇인지부터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네요. 우선 말씀드리면 그 메모는 제가 책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들을 적어놓는 '지도'와도 같습니다. 쓸 수 있는 것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네요. 
 우선 말 그대로 '질문'이 있겠습니다. 내 생각이 나아가는 지점이 있는데, 작가는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생략해 버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부분을 하나 적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읽었던 책의 메모를 들춰보죠. (악필이라서 직접 타이프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백상경제연구원에서 쓴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스마트북스, 2020)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263페이지에 '복제된 <모나리자>는 이미지일 뿐이며, 어느 잡지에 인쇄된 인물과도 다를 바가 없어졌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이걸 보고 제가 쓴 메모는 '그럼 진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그것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기의는?'입니다. 복제된 <모나리자>는 그렇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그 <모나리자>에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는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그 그림 하나를 보려고 줄을 서고 기다리는 것일까요? 이 뒤에는 그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후에 차차 제가 직접 답변을 찾아야 하는 질문이겠지요.
 그 다음의 유형은 '연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갑니다. 여러 개념을 배우고, 그 의미를 외우기도 합니다. 어디에나 정확한 의미로 쓰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은 그 다음입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가, 새로운 내용을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어떻게 '재조합'할 것인가. 다시 예를 들어보죠. 이번에 오랜만에 J. 다이아몬드의 Guns, Germs, And Steel (Norton, 2017)을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프롤로그에 쓴 메모 중 이 유형에 맞는 게 있네요! '얄리에게 주는 세 번째 유형의 답변은, 그 반대급부로 중앙화된 관료제를 필요로 했던 대규모의 관개 체계에 좌우되는, 고도로 생산적인 농업이 이루어졌던 건조한 기후의 저지대 강변 계곡의 중요성을 보여준다.'(Still a third type of answer to Yali invokes the supposed importance of lowland river valleys in dry climates, where highly productive agriculture depended on large-scale irrigation systems that in turn required centralized bureaucracies.; 22)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에서 '관개 체계'(irrigatoin system) 밑에 제가 적어놓은 메모는 '민주적이어야'(Deomocratic)이라고 써 있네요. 어렸을 때 읽었던 템마 카플란의 『당신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우태영 역, 다른세상, 2016)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나서이지요. 그 책에서는 민주주의의 시작이 물의 분배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거든요. 만약 나중에 민주주의와 물의 관계에 대해 쓸 일이 있다면 이 두 책을 연결지어서 생각할 수 있겠죠. 하나의 데이터베이스, 하나의 건물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변형'입니다. 작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 텍스트 그대로 100%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그것이 나에게 가지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교에서 교수님들이 계속 강조하시는 '자기 언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있겠네요. 같은 말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썼을 때,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법입니다. 작가는 자기 생각이니까 그냥 말하면 되는 것이지만, 저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죠.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한 예 역시 Guns, Germs, And Steel 에 쓴 메모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같은 페이지에 '복잡한 관개 체계는 중앙화된 관료제를 동반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지연 후에 따라온 것'(the complex irrigation systems did not accompany the rise of centralized bureaucracies but followed after a considerable lag; 22)이라는 말이 써 있고요. 그 후에 메소포타미아 지방, 이집트 지방, 미국 남서부, 남동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의 예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쓴 메모는 '그래서, 물은 그저 '충분조건'.'(So, the water is just 'sufficient condition')입니다. 다른 예로는 브래디 미카코의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를 읽고 쓴 메모입니다. '불쉿 잡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미가 있다고도 여겨지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그렇게 하도록 되어버린 시스템에 몸을(자신의 시간과 인생을) 맡기는 일이기 때문이다.'(231)라는 문장에 대해 제가 걱정하는 바를 써 놓은 메모네요. '인문학이 불쉿이 될 때. 생각을 잃은 세대가 될 때. 생각하지 않는 멋진 신세계의 도래.' 얼마 전에 서점에서 철학의 몰락, 21세기에 철학이 할 일에 대해 쓴 저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 영향인 듯 해요. 그 글은 제일 위험한 것이 우리가 무자비하게 지배당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가를 우리가 알지 못할 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시로 『1984』와 『멋진 신세계』를 비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변형'도 결국에는 '연결'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유형이자, 제가 가장 애정하는 유형은 '사념(私念)'입니다. '개인적 생각'이라는 뜻이죠. 원래 있는 말인 줄 알고 많이 썼는데, 없는 말이었네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형이고, 메모지에 '私'로 강조해 놓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학교 기숙사 벽면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을 공간을 마련했을 때, '사념 섹션'은 따로 분류했던 기억이 나네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섹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 좋은 생각이 갑자기 떠오를 수가 있거든요. 위의 '질문'이나 '연결', '변형'을 해 보면서 머리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각들의 종합일 수도, 아니면 갑자기 떠오른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메모를 훑어보며 가장 마음에 드는 사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의 '엠퍼시'라는 능력에 대해 논한 사념입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계속 엠퍼시는 타인이 어떻게 느낄지를 공감하는 것이며, 그 속에 '내가' 들어갔다면 어땠을까의 '심퍼시'와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즉, 타인을 알아가고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노력인 것이죠. 뭔가 이 칼럼의 주제와도 닿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쓴 사념 메모는 그렇습니다. '私, 우리는 엠퍼시를 경험할 때, 상대라는 책을 읽는 것이다.' 사념 섹션이야말로 제가 문장을 만들어내고, 또 앞으로 무슨 글을 쓸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입니다. 질문은 무궁무진하지요. 하다보면 도전적인 질문이 나오기도 합니다. '위선은 과연 나쁜가?'와 같은 질문이 그것이지요.
 그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자기 소유의 책이 있다면 그냥 책 위에다 작성하시면 됩니다. 어떤 문장에서 이런 생각이 났고, 이런 것을 연결해서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살 수는 없죠. 예를 들어, 저 위에서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라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입니다. 그리고 반납한 지 꽤 되어서 지금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장을 제대로 인용하고 그에 대한 생각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메모지'를 사용하라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문장을 쓰고 그 페이지를 옆에 써 놓은 다음,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지요. 특히 저처럼 언젠가 인용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가장 적합한 방법입니다. 물론 제가 말한 대로 한 권을 읽으면 메모지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읽는 중에는, 가급적 디지털 기기로 정리하지 않는 것으로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제 한계일까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책을 읽으면, 이상하게 책에 더 집중이 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는 글씨로만 하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소소한 팁을 한 가지 정도 더 말씀드리자면, 영어 원서를 읽을 때는 메모도 영어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어 원서를 읽으면서 영어로 생각하는 과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1.2. DB 구축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제 독서법의 문제(?)는 메모지가 매우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험 중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DB 구축'이라는 것입니다. 제 독창적인 방법은 아니고, 김을호 교수님의 『독공법』(푸른영토,2017)에서 보고 벤치마킹한 방법입니다. 키워드와 문장으로 찬 DB가 만들어지고, 조금 더 책을 분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이 방법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실험 중인 방법이라 예는 부족합니다. 사실 위에 있는 메모지에 쓰는 것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승옥 선생의 『환상수첩』을 읽으면서 써 놓았던 DB를 예로 들면서 DB를 쓰는 방법과 함께 문학은 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먼저 서지정보와 독서기간을 쓰고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메모처럼 저를 생각하게 한 문장들, 페이지, 제 생각을 쭉 나열하면서 내려갑니다.


 가끔씩은 제가 질문한 것을 책이 답변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예로 든 과정에서 답변이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네요. 이것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답을 찾아나갈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문학의 좋은 점은, 읽을 때 자신과 연관지을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책을 보면서 내가 동경하는 것, 내가 바라보는 것 등을 알아볼 수 있죠. 저는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소설의 인물에 저를 투영시키면서 본답니다. 반드시 그것이 주인공일 필요는 없어요. 다만 그 중에 어느 한 사람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본다면, 소설에 더 잘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죠. 


 마지막 예는, 너무 강박적으로 '알아내야 해!'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드리려고 넣었습니다. 저는 문학을 '공부'하는 위치에 있지만, 몇몇 문학 작품에서는 '감상'하는 위치에 머물러도 됩니다. 그리고 사실, 문학 보고서는 감상에서 출발합니다. 저, 제가 쓴 '30년대 지식인의 낭만'의 연원, 그리고 그것이 60년대까지 끼친 영향을 알아보는 것, 그것이 '진짜 공부'의 시작이니까요.

 1.3. 요약하기

 이것은 '논픽션'을 읽을 때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엄청 긴 글을 읽고 나서는 기억을 잘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사실은 긴 글을 읽어도 우리는 핵심적인 부분만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그 '핵심적인' 부분을 떠올리라고 하면 잘 기억날까요? 이것은 하나의 '인덱스'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발단은, 전공 관련 입문서를 읽으면서였습니다. 제가 항상 주장하는, '좋은 글은 사실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는 글이다.'라는 말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한 주제당 챕터가 네 개로 나누어져 있었고, 챕터별로 한 두 문장으로 정리하면 10페이지 내외의 글을 많아야 여덟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나열한 것으로 긴 글의 내용을 정리해 기억하면 되겠지요. 지금은 기사에서도, 그리고 어느 정도는 논문에서도 그 방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원칙은 한 가지였습니다. '한 문장으로 줄이자.' 가지를 치고쳐서 결국 한 문장으로 만들 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약간 변형된 형태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흐름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집어넣자.' 요약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한 번 제가 어제 읽었던 '챗GPT'에 관련된 기사를 친구에게 읽고 요약을 해 보자고 하면, 둘의 요약은 다르겠죠. 예를 들어, 저는 '챗GPT'가 과연 인간이 상상하는 것 말고 무엇을 상상하는지 궁금해한다면, 친구는 AI의 학습된 내용을 활용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럼 저는 활용하는 방식은 지나치겠지만, 친구는 잡아내서 그 부분을 요약하겠죠. 상상력에 관한 부분에서는 반대겠고요. 다시 말해, 비록 기사 요약이지만 그것은 저의 생각이 들어가 있는 하나의 글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쓰다가 제 생각을 집어넣는 편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챗GPT'가 아직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답변을 쓸 수 없고, 칸트의 정언적인 답변밖에 할 수 없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요약에 제가 적어놓은 것은, 지금도 제가 관심이 많은 분야에 대한 질문입니다. 'AI는 심지어 18세기 유럽에 살았던 프로이센 철학자가 상상했던 것마저 뛰어넘지 못하는가?' 점점 괄호가 늘어가면서 길어지는 요약을 보며, 한편으로는 다시 본래 했던 '한 문장' 원칙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내 개성이 들어간 요약을 완성시킬까에 대한 고민은 아직 유효합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취향에 맞게 선택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2. 그래서, 무엇을?

 그래서, 어떤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까요. 책은 크게 고전과 교양서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서야, 선생님들께서 관심 있는 분야의 권위 있는 책들을 찾아보면 되니까요. 분야별 도서에 앞서, 모든 학생 선생님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은 채사장 작가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시민의 교양』까지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번 '방학' 칼럼에서 위 책과 같은 제목의 팟캐스트를 추천드렸는데, 얼마 안 되어서 팟캐스트가 모두 내려갔습니다. 그 중에서 학문과 관련된 부분은 위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안 읽어보신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꼭, 꼭 읽어보시라고 하고 싶네요. 사람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15년의 어느 날, 친구의 추천에 이끌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도서관에서 들어올렸던 그 날, 책을 읽으며 받았던 감정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저의 생각, 그리고 저의 근간을 있게 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반쯤 고전이 되어버린 이름이라 많은 선생님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1. 인문

 인문 분야의 고전은 솔직히 많죠. 문학에서도, 철학에서도 넘쳐나는 것이 고전이니까요. 인문 분야의 고전으로 굳이 선정하고 싶은 책은 조지 오웰의 『1984』입니다. '빅브라더'라는 통치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것을 들고 온 이유는, 다양한 분야에서 생각해 볼 문제가 많아서입니다. 언어와 사고의 연결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통치의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도 있겠지요. 일차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경영이나 과학 분야에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빅브라더의 얼굴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인문 분야의 교양서에서 제가 추천드리고 싶은 책은 박숙자 선생님의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푸른역사, 2017)입니다. 해방 이후, 70년대까지 한국의 현대를 거쳐오며 주목받지 못한 자들이 책을 읽고 무엇을 꿈꾸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여러 현대 한국소설을 접할 수 있는 다리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삭막한 50-70년대를 너무도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하고 있어서 그 반어와 역설에 감동하고, 정말 끌리던 책이기도 합니다. 무등산 정화 도중 일어난 '무등산 무당촌 살인사건'과 관련해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소년과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가난한 일터를 가진 가장들은 만났고, 결국 모두를 잃었다.'(198)라는 문장으로 사건의 본질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소 아름다우면서도 내용을 알고 보면 씁쓸한 한 문장으로 그 문단을 맺는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1977년 4월 봄꽃은 왜 피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랐다.'(198)

2.2. 사회

 사회 분야의 고전은 정치, 경제 분야에서 다양합니다. 사회 분야에서 추천드리고 싶은 고전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입니다. '아름다운' 민주주의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소가 생각한 자유로운, 자신만의 의견이 가능한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루소를 어떻게 변형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아름답던' 시절을 살아가던 루소의 생각은 어떻게 변형해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흔히 배우는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현재에서 볼 때 모두 한계점이 보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통찰력이 번뜩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구시대의 사고 방식이라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에 맞게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물적인 사회는 급변했지만, 인적인 자질은 빨리 변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사회 분야의 교양서도 풍부합니다. 지금 떠오르는 추천 도서는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이창신 역, 김영사, 2019)가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선생님들께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얼마나 세상을 폐허로 봤는지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생각하기 쉬운 방향으로 생각을 이끌곤 합니다. 특히 그것이 부정적일 경우, 거기에 묻히게 되지요. 하지만 가끔씩은 그 심연으로 들어가는 길에 제동을 걸어줄 장치가 필요합니다. 가끔씩은 '아름다운' 세상을 볼 필요도 있는 것이지요.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끔찍하기도 하지만,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기도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같은 맥락으로 스티븐 핑커 교수의 『지금 다시 계몽』(김한영 역, 사이언스북스, 2021)이라는 책도 있겠네요. 우선 『팩트풀니스』를 읽으시고, 혹시 이 분야에 관심이 많다면 핑커 교수의 긴 책들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핑커 교수는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을 아울러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짧게 쓰지는 못하는 분이라고 설명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2.3. 자연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추천드릴 책이 너무 당연한 책밖에 없네요. 우선 자연과학하면 떠오르는 고전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는데, 지난 학기에 진화론을 배운 후로 이 책을 접하니까 배운 내용을 되짚어보는 느낌이더군요. 그러니까 유전자가 '이기적'이고, 개체의 이익에 당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유전자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그리 비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찰'을 할 수 있었던 도킨스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많이들 고전으로 읽는 책이니까 여러 번 고비가 있어도 인문계열 선생님들도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자연과학 서적이 『이기적 유전자』 아니면 『코스모스』가 유행이라던데, 조금 더 안 알려진 고전을 알려드리지 못해 아쉽네요. 아쉬운 관계로, 약간 덜 유명한 고전을 소개해 드리자면, 찰스 다윈이 쓴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진화학 교수님께서 이 책을 '그림책'이라고 표현하셨던 게 인상 깊었습니다. 잠시 과제 때문에 조금 건드려 보기는 했는데, 감정을 물질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 같습니다.
 교양서 역시 유명한 책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학기에 진화학을 배운 저는, 제가 과제로 제출했던 리 골드만의 『진화의 배신』(김희정 역, 부키, 2019)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진화가 뜻 때문일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소 퇴행적이어 보이는 질병들도 있지요. 우리의 사회는 진화했는데, 왜 우울증은 여전히 심하고 자살율은 극심할까요. 리 골드만은 비만, 뇌졸중, 우울증, 심장 질환 역시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르게' 발전한 것이 문제라고 설명하는 것이지요. 우리 몸은 아직 업데이트 되지 않았는데, 주변 기기들은 너무 빨리 발전하여 '호환'이 안 되는 기계가 된 것 정도로 설명드릴 수 있을까요. 이 책뿐 아니라 문학을 진화학의 측면에서 재조명한 데이비드 바래시와 나넬 바래시의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박중서 역, 사이언스북스, 2008)를 추천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앙혼'으로 설명한 것도 나름 인상 깊었습니다. 인문학도면서 진화학을 맛보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국내 작가 중에서 정재승 교수의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어크로스, 2020)도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울러 뇌과학과 제4차 산업혁명에도 관심이 있다면 이상완 교수의 『인공지능과 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솔, 2022)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이전에 쓴 칼럼의 댓글로 책 추천 칼럼을 작성해 달라고 하셨죠. 10월부터 말씀해주셨는데 4달이나 지난 지금,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사명'이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 그래서에요. 제가 좋은 책을 소개해 드릴 수 있을까. 나의 생각에 치우치지 않고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는 책을 선정해야 할까, 고민이 많아 미루고 미루었습니다. 그러다가, 솔직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책들을 추천하는 게 맞겠지요. 그럼에도, 충분히 선생님들께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책들을 추려 넣었습니다.

 여기 소개시켜 드리지 못한 책이 많습니다. 다분히 현재 제 관심사를 반영하여 작성한 면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관심사와 함께 댓글에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괜찮아 보이는 책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웬만하면 제 분야 쪽으로 질문주세요. 몇몇 분야는 제가 잘 모른다고 답변드릴 수도 있는 점 미리 사과드립니다.) 세 줄 요약과 함께 마무리하지요.

세 줄 요약

1. 질문하며 읽자. 메모는 그 질문을 후에도 떠올릴 수 있는 '방아쇠'다. 데이터베이스도 만들고, 요약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읽자.
2. 질문은 책을 읽으며 떠오른 나의 모든 생각을 통칭한다. 정말 질문일 수도, 다른 자료와의 연결일 수도, 나만의 해석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나의 개인적 생각일 수도 있다.
3. 인문 분야는 『1984』와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사회 분야는 『사회계약론』과 『팩트풀니스』, 자연과학 분야는 『이기적 유전자』와 『진화의 배신』을 읽어보자.

 책을 읽을 때는, 아무리 나와 다른 분야여도 자신이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역시 긴 칼럼이 된 것 같은데, 위의 세 문장은 꼭 읽어보시고 계속 읽어나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즐거운 편지는 '마지막 즐거운 편지'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제가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은 마지막 조언을 담고자 합니다. 다음 달에도 편지 할게요!

 다음 달에도 즐거운, 유익한 내용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마지막 즐거운 편지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02월 20일,
진심을 담아,
이강 올림.
  • 이강
  • 독서
  • 고등학교
멘토

서울대

이강 멘토

  • ○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22학번
  • ○ 인문계열 / 수시전형
  • ○ 메가스터디 18기 목표달성 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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