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 20기 목표 달성 장학생, 서울대학교 의예과 이규현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수험생활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을 희생하여 공부에 매진하는 고3이나, 타지로 떠나서 홀로 학원 생활을 하는 N수생 등 다양한 분께서 외로움에 대한 고민을 댓글과 메일로 남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레 떠벌릴 일은 아니나, 저도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쓸쓸하게 혼자 공부했던 경험이 있기에 여러분과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제법 있습니다. 당시의 저는 스스로가 느끼는 외로움에 현명하게 대처하고자 몇 권의 책을 읽어보았고, 이를 나름대로 극복하여 평온한 마음으로 입시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외로움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늘어놓도록 하겠습니다.

[1] 외로움, 자연선택의 결과물

외로움은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의 조상 중에서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협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야생에서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홀로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협동하여 살아남아 자손을 많이 남겼을 것입니다. 외로움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형질이었고, 생존자의 후손인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는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초기 인류는 함께 무리를 이룰 때 생존할 가능성이 가장 컸다. 따라서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을 느끼고 본의 아니게 외톨이가 될 때는 불안감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진화를 통해 살아남으면서 인간은 강한 유대감을 선호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더구나 인간은 유대감이 충족될 때 기분이 좋을 뿐 아니라 안전하게 느끼도록 진화했다.'

 

: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조상이 물려준 지극히 자연스러운 유산입니다. 성적, 집안, 외모, 사회성 등 다양한 지표에 관계 없이 우리는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서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선물이었던 외로움이, 더 이상 선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외로움과 같은 감정은 조기 사망 가능성을 26~29% 높인다. 이 수치는 매일 담배 15개비씩을 피우는 사람의 조기 사망 가능성과 같은 수치다. 이외에도 심장병 위험이 29%, 뇌졸중 위험이 32% 커지며 치매 위험은 무려 50%까지 늘어난다.'

 

: <Our Epidemic of Loneliness and Isolation 2023>, Vivek H. Murthy

이처럼, 외로움은 우리에게 생존을 안겨주었지만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때는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옵니다. 자연선택이 완벽한 생명체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적응은 대부분의 경우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인간은 유연한 다리와 관절로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로 인해 관절이 탈구되거나 인대가 상하기 쉬워진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은 무언가를 잃지 않고 얻는 것을 허용할 만큼 형편좋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2]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위에서 언급한 외로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제대로 다루어야 합니다. 많은 매체에서 외로움을 홀로 있는 것을 괴로워하는 상태로 정의하는데, 이는 홀로 있는 것을 즐기는 상태인 고독과는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외로움을 제대로 다룬다는 것은, 외로움을 고독의 상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서 제가 구구절절 설명해도 여러분께 와닿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한국 문학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잠깐 빌려서 표현하겠습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가게 문을 닫고 주인댁에서 날라 온 저녁밥을 먹고 나면 비로소 수남이 혼자만의 시간이다. 꿀 같은 시간이었다. 책을 펴 놓고 영어 단어를 찾고, 수학 문제를 풀어 보고, 턱을 괴고 소년답게 감미로운 공상에 잠길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 <자전거 도둑>, 박완서

윗 부분과 아랫 부분 모두 홀로 있는 장면이지만, 각각의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다소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윗 부분은 아내나 가족과의 인연이 끊어져 외로워하는 화자를 보여준다면, 아랫 부분은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며 자신을 갈고 닦는 고독한 인물을 보여줍니다. 저는 수험생 여러분이 아랫 부분의 인물처럼 홀로 보내는 수험생활을 외로움이 아닌 고독으로 가득 채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 마치며

수험생활에서 남들과 다른 결과를 내려면, 남들과 다르게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지극히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기보다 점심시간에 앉아서 자습을 해야 하고, 친구들이 농구나 풋살을 할 때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고, 친구들이 잠에 든 시간에는 졸음을 참아가며 책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친구의 권유가 점점 뜸해지고, 관계가 서서히 멀어져 갈 때쯤 나의 모의고사 성적은 조금씩 올라갑니다. 그때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미묘해서, 무언가를 잃지 않고 얻는 것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준엄함을 무심코 떠올리게 됩니다.

어차피 목표를 위해 홀로 보내야 하는 수험생활이라면, 외로움보다는 고독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외로움을 이겨낸 채 고독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을 모두 응원합니다!

[4] Appendix.

조만간 저를 비롯한 목표 달성 장학생 3조가 촬영한 영상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3조의 두근두근 미팅 스토리를 만나보고 싶으시다면, 한 번쯤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10분이나 되는 순공시간은 덤입니다!

+ 외로움(Loneliness)와 고독(Solitude)의 의미 구분은 ‘Our Epidemic of Loneliness and Isolation 2023, Vivek H. Murthy’를 참고했습니다. 해당 문서에서는 외로움(Loneliness)을 ‘A subjective distressing experience that results from perceived isolation or inadequate meaningful connections, where inadequate refers to the discrepancy or unmet need between an individual`s preferred and actual experience.’로 정의했고, 고독(Solitude)을 ‘A state of aloneness by choice that does not involve feeling lonely.’로 정의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임의로 번역하여 표현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