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능 끝나고 온다고 해놓고 고생할 여러분이 자꾸 눈에 밟혀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저희는 벌써 새내기맞이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얼른 후배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는 이맘때 슬슬 친구들이 야자도 안 해서 학교가 많이 휑했던 기억이 납니다.

날씨는 점점 쌀쌀해지는데 혼자 불 꺼진 계단을 오르며 대학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면접 때 말 잘못하면 어떡하지? 되뇌이며 얼마 안 남은 수능을 걱정하곤 했네요.

연세대 합격 발표는 수능 다음날이었습니다.

입시할 때 매일 하늘끝까지랑 서곡을 듣고, 정독실 책상에 상표도 안 뜯은 독수리 스티커를 붙여놓았을 정도로 제 꿈의 학교였어요.

현재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서울대만큼 가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원래 수능 다음날 결과가 나온다고 얘기는 들은 터라 약간은 짐작했다만, 면접을 너무 못 봤다고 생각해 예비라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캄캄한 방에서 쭈그려 앉아서 주저없이 합격버튼을 눌렀는데 연세대 총장님이 나오시더라고요.

주무시는 아버지께 가서 나 연세대 붙었어! 라고 소리치고ㅋㅋ 친구네 집에 뛰어가서 큰 화면으로 다시 재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후 4시쯤이었는데 벅차고 또 믿기지 않았고, 많이 신났습니다.

또 연대 hass 면접 안 가도 돼서 좋았어요.

낭 - 만

서울대도 조기발표를 했습니다.

오후 4시쯤부터 발표 창이 바뀌어 있었고, 오후 5시에 나왔던 것 같아요.

저는 4시부터 6시까지 과외여서 옆 동네 카페에 가 있었습니다.

퍽 추운 12월 해질녘 성에 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4시 59분까지는 과외에 집중하다, 5시가 되자 도저히 심장 떨려서 말을 못할 것 같아 반신반의하며 발표 창을 들어가봤습니다.

결과가 나와 있더라고요.

과외학생은 중2였는데 내심 흥미로워하는 것 같아 10분만 쉬자고 하고 같이 합격 확인했습니다.

핸드폰으로 봐서 그동안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admitted가 바로 나오지는 않았어요.

내가 면접 3:1을 뚫었을까.. 압박이 너무 심해서 면접 아쉬웠는데.. 떨어져도 연대 붙었으니 괜찮아! 라고 생각하며 과외학생이랑 말없이 화면을 옆으로 쓱 이동하는데 합격이더라고요.

학생에게 잠깐 양해 구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드렸는데 선생님들은 이미 확인하셨더라고요.

바로 다시 수업 진행해야 해서 울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고 그냥 얼떨떨했습니다.

기쁘다기보다는 그냥 3년간의 마음고생이 생각나서 안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은 과외 끝나고 퇴근하신 어머니랑 본가에서 나름 유명한 식당에 갔는데 밥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대학 붙으면 꺼내려고 저 몰래 6개 대학 모두 거실용 플랜카드를 만들어오셨더라고요.

수능날에도 저만을 위한 응원메세지 만들어오셨는데 거실에 서울대 붙은 거 보니까 그동안 저보다 더 마음 졸이셨을 부모님께 너무 감사해서 울컥했네요.

성균관대 글로벌경영은 결과는 가장 일찍 나왔는데, 3차 추합이라 합격은 가장 늦게 확인했습니다.

고2분들 내신 50% 반영 믿지 마시고 학종은 자기 생기부에 맞는 곳 쓰세요.

참고로 합격 취소한 후 전화를 받았는데 최종 대학을 물어보셔서 서울대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ㅎ,,

서강대랑 고려대는 12월 15일에 나왔어요.

교과로 넣어서 사실상 수능최저만 맞추면 되었기에 수능날 거의 합격이 확정났던 터라, 잊고 있다가 15일 저녁 먹을 때 스마트폰으로 확인했습니다.

고려대는 감사하게도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사실 졸업할 때까지 전액장학금이라 미련은 없습니다 하하

잠깐 가라앉아 있었던 기억들을 되살려 보니 벌써 옛날 일 같은 그때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퍽 추워서 빨개진 코를 훌쩍이면서도 웃음이 지어져서 운전면허 따러 신나게 뛰어갔던, 제 십 대의 마지막 계절이었습니다.

요즘 모의국회(정치학술극)을 일주일 앞두고 전공시험과 과제가 겹쳐 거의 매일 밤을 새고 있는데, 문득 관악에 좀 더 정을 붙여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고생해서 왔지만 사실 기대와 다른 수업 방식에 실망도 많이 했고, 그렇다고 많이 논 것도 아니라 고민과 회의에 빠져 무거운 표정으로 오르막길을 걸어다니는 게 일상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고요.

대학다운 대학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이 공동체를 아껴서, 여러분이 입학했을 때는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다 떠나서 대학 와서 만난 사람들만 떠올려 봐도, 고생해서 서울대에 온 건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생기로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여러분의 가까운 미래일 테니 너무 재미있어하진 마세요.

미리 보면 재미없잖아요.

{싹 난} 감자를 삶는 시간/김명원

​

하루가 휜다, 저녁,

배고픈 전화선이 붉게 운다

​

기어이 교신이 끊어진 독기 품은 성기들

못내 저항하던 것들을 칼로 찌르고

겁탈하고 기어이 도려낸다

​

널브러진 찜통 안에서

그의 시체가 하얗게 꽃 핀다

​

가끔은 내가 살해했던 봄들이

더운 빗물로 배달될 때도 있으리라

​

서리 끼는 창문 넘어 먹구름 몇 닢

문득 아프다

​

혼자 울던 전화선이 지친다

​

뜨거운 울음 범벅의 흰 꽃살

거침없이 먹는다

흰 하루가 접힌다, 밤

​

으깨진 그가 막사발에서

꺾인 관절들을 추스르고 있다

​

살의를 가지기에 적당한 늦은 어둠,

몽롱한 충동이 나에게 또다시

비린 주문을 건다

​

독한 추억일수록

잔인하게 삶고 싶다